서해와 7광구에 변수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를 정리해 보겠다.
제주도 남쪽의 동지나해에는 제주 분지라 불리는 대규모 퇴적지역이 존재한다. 이 지역은 다양한 경제적, 지질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제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7광구'라는 용어에 익숙할 것이다. 제주도는 일본과 가까운 거리로 위치해 있으며, 바닷속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대륙붕과 이어져 있는 독특한 지리적 특성을 지닌 지역이다.
1968년에는 UN 극동위원회가 미국 해양국과 협력하여 제주분지 인근의 지질 분석을 시작했다. 이 분석 결과는 1969년에 에머리(Emery) 보고서로 발표되어 제주 지역의 지질적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제주도는 경제와 관광의 중심지로 부각되고 있다.
대만과 한국, 일본 사이의 대륙붕 퇴적층을 분석한 결과,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가 매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유전 개발은 지질 분석을 통해 유망 지역을 발굴하고, 지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물리 탐사를 진행한 후, 시추공을 통해 실제 매장량을 확인하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특히, 1969년에 발표된 유엔 보고서는 이러한 지질 분석을 통해 유망 지역을 찾아낸 사례로 주목된다. 또한 UN 조사가 진행되던 1968년, 한국은 해저 개발법을 상정했으며, 에머리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인 1970년 1월 1일에 이를 공포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한국의 해양 자원 개발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한국은 초스피드로 제주 분지를 선점하고, 7광구에 대한 소유권을 선언하였다. 이는 해저광물자원 개발법을 통해 일본의 약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결과이다.
제주 분지는 일본과의 거리상 가까운 위치에 있지만, 바닷속에서는 한국과 대륙붕으로 연결되어 있는 점이 중요하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한국의 자원 개발에 큰 의미를 지닌다.
일본의 오키나와 해곡은 대륙붕을 가로막고 있는 2,300미터 깊이의 깊은 고랑이다. 이 지역은 분홍빛 영역으로 알려져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대륙붕 영유권에 대한 논의는 두 가지 이론으로 나뉜다. 첫째는 대륙붕이 자연적으로 이어진 국가가 영유권을 가진다는 '자연 연장설'이며, 둘째는 두 나라의 중간선에서 권리가 나눠진다는 '중간선 이론'이다. 1960년대에는 자연 연장설이 널리 받아들여지던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한국의 해양 자원 개발 계획에 발칵 뒤집혔다. 한국이 경제협력을 중단하겠다는 일본의 위협에 대해, 한국은 미국의 코암사를 초청하여 해저 자원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는 한국이 대일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일본은 조선에 투자한 자본과 일본인의 개별 재산을 포기하고, 총 5억 달러의 지원을 약속했다.
당시 한국은 경제 성장을 위해 차관이 절실했으나, 일본은 합의된 2억 달러의 차관 지급을 계속해서 미루고 있었다. 결국 한국은 일본의 차관 지급 지연 끝에, 2억 달러를 받기로 합의하게 된다. 1978년부터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자원을 개발하기로 하였고, 석유가 발견되면 수익을 5 대 5로 나누기로 했다.
이 차관 중 1억 3200만 달러는 포항제철(현재의 포스코) 건설에 사용되었고, 나머지는 경부고속도로 등 다양한 개발 프로젝트에 활용되었다. 이러한 협정은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양국 간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 초반, 한국은 일본과 해양 경계에 대해 자연 연장설로 의견 충돌을 겪고 있었으나, 중국과의 경계는 중간선을 설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중국은 황하에서 발생하는 토사가 많아 바닷속 대륙붕 기준으로 볼 때 한국보다 면적이 훨씬 넓다는 점에서, 중간선 설정이 한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제주 분지에서 한일 양국은 몇 차례 석유 탐사를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제법의 판례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까지는 자연 연장설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1982년 유엔 해양법 협약이 체결되면서 중간선 이론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특히, 1985년 리비아와 몰타 간의 대륙붕 영유권 분쟁에서 중간선으로 판결이 내려지며 이 이론은 대세가 되었다. 이 판결을 지켜본 일본은 7광구 문제를 국제사법 재판소로 가져가면 중간선이라는 결론을 얻을 것이라 판단했다. 일본은 이에 따라 한국과의 공동 개발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고, 7광구 탐사에 경제성이 없다고 주장하며 한국의 시추 요청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1978년부터 50년간 7광구에서 석유가 발견될 경우, 공동 개발 협정에 따라 한국과 반띵해야 했지만, 협약이 종료되는 2028년 이후에는 국제법 재판에서 승소할 경우 일본이 7광구를 독점할 수 있다는 계산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본은 침대축구로 시간을 끌고 있는 사이, 중국이 개입하면서 7광구의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1983년에 중국은 7광구 근처에서 원유와 가스정을 발견하였다. 이 발견은 핑후 유전으로 알려져 있다.
소형 유전의 경우 원유나 가스의 양이 적기 때문에, 유조선을 통해 자원을 운송한다. 반면, 대형 유전은 육지까지 파이프라인을 연결하여 원유와 가스를 수송한다.
중국이 핑후 유전에서 얼마나 많은 석유를 추출하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상하이로 연결된 파이프라인을 고려할 때 대형 유전으로 추정된다.
또한, 7광구 인근에서 핑후 유전이 발견되자 센카쿠 열도의 가치가 재평가되었다. 센카쿠 열도는 대만 앞에 위치한 여러 개의 무인도와 암초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자원 개발과 관련된 변화는 지역 정치와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무인도는 국제법상 영해권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일본은 7광구와 같이 국제법의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센카쿠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에 중국은 반발하며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은 핑후 유전에 이어 고운, 정, 춘 효, 소흥 등 7광구 인근에서 지속적으로 석유와 천연가스를 발견하고 있으며, 현재 16개의 유전과 가스전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자원 개발은 지역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2004년, 중국은 7광구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유전을 발견했다. 이 유전의 이름은 '용의 우물'이라는 뜻의 롱징(용정)으로 지어졌고, 시추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롱징 유전이 7광구와 너무 가까워, 7광구의 석유자원이 롱징으로 빨려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중국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2008년, 중국의 후진타오와 일본의 후쿠다 총리는 이 지역을 중일 공동개발 구역으로 설정하는 합의를 체결하였다. 이 공동개발 구역은 7광구와 불과 860미터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후 일본은 합의에 따라 해당 지역에서의 시추 작업을 미루며 중국과의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
일본은 롱징 유전 문제를 해결했지만,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그들은 조금만 더 기다리면 7광구가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중국이 7광구에 대한 욕심을 내기 시작한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법적으로도 중국이 개입하게 되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다.
중국은 황하에서 흘러나오는 토사로 인해 대륙붕이 발달한 나라로,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연 연장설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배경은 일본이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중간선 이론에 따라 판례가 결정된 상황이지만, 중국이 주장하는 자연 연장설이 힘을 얻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실제로 중국은 2012년부터 자연 연장설을 근거로 7광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국은 중국의 입장에 맞서 일본과의 협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은 대륙붕이 발달한 국가로, 한국이 중국의 자연 연장설에 동참할 경우 7광구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서해의 중간선 구분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처럼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의 대응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60. 지금 와서 다시 보면, 이어도 기지의 위치가 절묘함.
현재 위치에서는 건설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어도 기지는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 중인 1995년에 착공되어, 참여정부 시기에 해당하는 2003년 6월에 준공되었다. IMF 외환위기와 관련하여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금융실명제 도입이나 군부 사조직 척결 등에서 보여준 추진력은 분명히 대단한 대통령이었다.
7광구와 관련하여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본과 중국이 한국을 제외한 채 합의를 진행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일본도 이러한 선택은 부담스러울 것이다. 중국은 영토 문제에 있어 매우 강한 권리를 주장하는 나라로, 이러한 요소는 복잡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한일 공동 개발 구역이 해제된다고 해서 반드시 일본의 소유로 귀속되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 해당 지역은 분쟁 지역으로 변모하게 된다. 만약 분쟁 지역으로 발전한다면, 중국이 참전할 가능성도 있어, 한일전이 한중일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일본은 차라리 한국과 적당한 비율로 나누어 개발하자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의 참여를 배제하고 7광구를 공동으로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실제로 2024년 9월 27일에는 한국과 일본 간의 7광구 공동 개발 협상이 39년 만에 재개되었다.
현재 일본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다소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될 수 있으며, 향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중국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의견이 있다.
중국은 7광구 인근 한중 잠정조치수역에 직경 50미터, 높이 50미터 이상의 대형 철골 구조물을 설치했다.
이 잠정조치수역은 한국과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겹치는 민감한 지역으로, 양국 간 경계선 확정을 유보한 상태이다.
잠정조치수역은 한중 양국 간에 어업을 제외한 시설물 설치와 지하자원 개발을 하지 않기로 합의된 지역이다.
그러나 2024년 12월, 한국의 정찰위성에 의해 이 지역에 대규모 철골구조물이 설치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중국 측에서는 이 구조물이 '어업 보조 시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2022년 4월에도 이번보다 작은 규모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발견된 사례가 있어, 이러한 시설물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두 나라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으며, 향후 상황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은 한중 잠정조치수역에 12개의 구조물을 설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시설은 단순한 어업 보조 역할을 넘어서는 것으로, 남중국해의 상황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남중국해에서는 초기에 무단으로 구조물을 설치한 후, 2013년부터 이를 인공섬으로 확장했으며, 이후 영해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이 만들고 있는 인공섬들은 군사기지로 변모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리핀의 사진작가 아카얀은 스프래틀리 군도의 7개 암초에 중국이 군사기지를 건설한 모습을 촬영하여 트위터에 공개했다. 이들은 단순한 시멘트 구조물이 아니며, 부두, 공항, 항공기 격납고 등 군인들이 거주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은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지도상에서 확인해보면, 중국이 주장하는 남중국해의 9단선(보라색)은 명백히 과도한 주장으로 보인다.
중국은 서해와 7광구까지 9단선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트남의 남중국해 영해 확장 대응은 주목할 만한 사례로 여겨진다.
2014년 5월 2일, 중국의 선단은 대형 시추선을 끌고 운행을 시작했다. 이 시추선은 베트남 동쪽으로 193킬로미터, 중국 하이난섬 남쪽으로는 290킬로미터 지점에 도착했다. 이러한 중국의 해양 활동은 지역 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으며, 향후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대응이 주목된다.
HD-981이라는 시추선은 건물 40층에 해당하는 높이를 자랑하는 초대형 시추선이다. 이 배는 해저 3킬로미터 이상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92. 80척에 이르는 중국의 배들과 항공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HD-981이 등장하자, 베트남 정부는 30척의 선박을 출동시켜 그 진로를 차단했다.
93. 이 해역은 중국과 베트남 모두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지역이었다.
94. 중국은 강력한 물 대포를 발사하며 베트남 선박들을 저지했고, 그 결과 베트남 선박 1척이 격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95. 흥분한 베트남 국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옴.
베트남에서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시위대는 베트남 내 중국 공장과 사무실에 방화를 하고, 중국인들에 대한 폭력도 발생하여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베트남에 거주하던 중국인 7천 명은 긴급하게 중국으로 대피해야 했다. 이로 인해 중국의 HD-981 시추선은 시추 작업을 중단하고 귀국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중국은 베트남 국민들이 자국민과 중국 기업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중국 시추선을 내쫓으며, 중국이 석유 채굴을 시도했던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시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서해 잠정구역에 설치되는 철제 구조물에 대해 중국이 이를 단순한 어업보조시설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 역시 비슷한 지역에 동일한 시설을 설치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들은 정확한 타이밍과 기세 싸움이 중요한데, 현재의 혼란스러운 국내 상황 속에서 과연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문민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이어도 기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결정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기지를 통해 우리나라의 해양 권익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국제 정세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우리의 입장을 강화해 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