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의 새로운 변화 요인, A/S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UST와 관련된 이슈가 큰 영향을 미친다.
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조선업 동향에 귀 기울여야 할 때이다.
조선업 분야에서 활동 중인 한국, 중국, 일본 국가들 중 미국의 선박 수수료 규제로 혜택을 받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 있다.
일본이 물량을 독차지할 것이라는 우려가 댓글에서 나타나고 있어, 한국 조선사들이 일본과 상선 시장에서 경쟁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 정리해보려 한다.
과거에는 세계 조선업의 중심이 영국이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앞으로 조선업의 동향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영국의 조선업은 뛰어난 기술력과 생산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몇 가지 문제점이 존재했다. 이들 조선소에서는 종이 도면을 기반으로 설계를 진행한 뒤, 도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리벳을 사용하여 선박을 제작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1950년대에 들어서 일본은 조선업에서 획기적인 기술 혁신을 이루어냈다. 이 시기에 일본은 리벳 대신 용접 기술을 적용하여 철판을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로 일본 조선업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영국의 전통적인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6. 이제는 못으로 하나하나 고정하는 방식이 아닌, 용접을 통해 강하게 결합하게 되어 접합부의 내구성이 향상되고 건조 시간이 단축되었다.
7. 블록 공법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8. 도크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에서 미리 제작한 작은 블록들을 도크에서 용접하여 조립하는 방식으로 건조가 이루어진다.
용접과 블록 공법의 융합은 일본 조선사에 막대한 경쟁력을 부여하였다. 이로 인해 영국의 조선업체들은 일본에 뒤처지게 되었다.
영국 또한 이 두 가지 공법을 도입하려고 노력했으나, 노조의 반발로 인해 신속하게 변화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일반 상선 건조의 우위를 일본에 내주게 되었다.
결국, 영국을 포함한 유럽은 일반 상선 건조를 포기하고, 크루즈선, 시추선, 심해 탐사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략적 변화는 시장의 요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일본은 용접과 블록 공법을 전면적으로 채택하여, 현재 세계 상선의 거의 60%를 차지하는 강력한 조선국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일본 조선업계의 혁신과 기술력이 만들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1973년과 1978년에 발생한 1차 및 2차 오일쇼크는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가가 급격히 상승하자, 글로벌 경제는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으며 해운 물동량 역시 눈에 띄게 감소하게 되었다.
물동량의 감소는 배가 남아도는 상황을 초래했고, 일반 상선의 주문량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한국의 조선사들은 저가 수주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반면, 일본의 상선 수주는 절반으로 줄어들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일본 정부는 상선 수주가 절반으로 줄어들자 \'조선 합리화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다. 이 정책의 핵심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일본 조선업의 현장직 임금이 높은 점이 경쟁력을 저하시킨 원인으로 지적된 것이다. 일본은 저임금을 이용하는 한국 조선사에 대응하기 위해 인건비 등의 비용 절감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일본은 현장 인력의 임금을 즉각적으로 낮출 수 없었기 때문에 설계 관련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1960년대부터 일본의 조선업계에도 컴퓨터를 활용한 설계(CAD)와 제작(CAM) 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컴퓨터의 도입으로 정밀한 설계가 가능해졌으며, 선주가 요구하는 설계 변경이나 맞춤형 요청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효과를 얻었다.
이와 함께 일본 조선사들은 모듈식 설계 방식을 채택하여 선체의 부품을 표준화하고 대량생산을 진행함으로써 품질 향상에도 기여하였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설계 분야에서 일본 조선사들이 갖고 있는 강점을 강화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일본 조선사들의 설계 분야 자동화는 성공적인 지식경영 사례로 주목받았으며, 초기에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일본은 설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설계 기법을 도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생산설계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조선업계는 기술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게 된다.
배의 설계 과정은 기본 설계, 상세 설계, 그리고 생산 설계로 나눌 수 있다. 설계팀은 기본 및 상세 설계를 완료하여 현장에 전달하게 된다. 현장에서는 이 설계 도면을 바탕으로 배를 제작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일본은 여기에서 생산 설계라는 개념을 추가하여 발전시켰다. 생산 설계는 용접 기술만으로도 숙련된 인력이 아니더라도 설계도를 보고 배를 제작할 수 있도록 세부적으로 설계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러한 생산 설계가 정착됨에 따라 숙련된 현장 인력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게 되었다.
인력이 감소하면서 현장에서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해지고, 본사의 설계팀은 점점 더 강력해지는 추세를 보인다. 본사 설계팀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일본의 조선사들은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 유수의 대학 출신들에게 높은 연봉을 제공하며 채용을 시도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조선소가 지방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역적 한계로 인해 인재 유치가 어려워지고, 조선소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업계는 인력 관리와 설계 방식을 재조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의 조선업체들은 지방 근무를 꺼리는 우수한 신입사원들을 유치하기 위해, 도쿄 사무실을 신설하도록 설계팀에 요청하였다.
이로 인해 설계 업무는 도쿄에서 진행되지만 생산은 지방에서 이루어지게 되면서, 현장과 설계팀 간의 소통이 단절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생산설계 방식이 자리잡으면서 현장 인력에 대한 수요도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숙련된 현장 인력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신입 인력이 선호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장 인력이 신입 위주로 채워짐에 따라 생산설계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고, 이로 인해 설계팀의 조직 규모도 커지게 되었다.
조선업체들은 설계 조직이 비대해지자 설계 비용을 줄이기 위해 표준화 작업을 도입하였다. 표준화란, 각 선박을 개별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처럼 기본 모델을 정하고 몇 가지 옵션만 추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표준화가 일본 조선업체에 정착하게 되면서, 숙련된 현장 인력뿐만 아니라 본사의 설계팀에 대한 필요성도 감소하게 되었다. 설계팀의 필요성이 줄어들자 우수 인력을 유치하려는 노력도 사라지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 내 조선학과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1999년 도쿄대학교를 시작으로 조선학과는 점점 줄어들었고, 현재는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 조선업의 구조적 변화와 함께 인력 양성 체계의 쇠퇴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있다.
조선업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숙련된 인력이 꼭 필요한 분야이다. 일본의 경우, 숙련된 현장 인력들이 점차 노령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생산 설계와 표준화가 줄어들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신형 상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상선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초대형 선박이 등장하면서 선주들의 요구도 점점 까다로워졌다. 그러나 일본은 설계 관련 조직을 축소하고 표준화에 집중한 결과, 다양한 상선의 수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문제는 설계에만 그치지 않았다. 현장 인력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조선업의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앞으로의 대응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